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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신에게 복음을 전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신 지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자신의 백성에게 참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는 이 소식 복음. 이 복음 메시지야말로 성경 66권이 말하는 핵심이자 모두가 알아야 할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소식이다. 이 복음을 믿음으로 우리는 구원 받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죄인인 우리가 말이다. 주님의 측량할 수 없는 그 은혜로, 값없는 선물로 우리는 죄인에서 의인의 신분이 되었다. 우리의 행위가 아닌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말이다(롬3:28).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사랑이 우리를 살리셨다.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참 구원 안에 있는 성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이 복음을 등한시 여기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마치, 구원을 이미 받았기 때문에 더이상 이 기초적인 복음이 더이상 자신에게 필요 없다는 듯, 혹은 이를 다 깨달았다는 듯이 말이다. 이 단순해 보이는 메시지를 넘어 더 고등한 무언가를 알아야만 신앙 생활을 제대로 할 것 같은 생각들이 우리를 사로잡을 때 종종 이러한 오류를 범하게 되는데,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복음은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할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더욱 예수님을 닮아가게 하는 역할을 한단 말인가? 즉, 구원 뿐만 아니라 성화를 이루게 하는 주님의 능력이란 말인가? 나는 확신을 가지고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정말 그렇다고 말이다. 복음은 우리를 주께로 처음 인도할 뿐만 아니라, 계속 주님 안에 거하여 주를 더욱 바라보게 함으로 그를 더욱 닮게 하는 온전한 주님의 능력이다. 우리는 사도 요한을 통해 이를 좀 더 명확히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영적 제자들에게 지속적으로 복음을 전했는데,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알기 때문이요” (요일 2:21). 또한, 그는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하리라 (요일 2:24)” 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처음부터 들은 것” 은 요한의 제자들을 구원으로 이끈 “복음 메시지”를 뜻하는데, 그가 이미 구원받은 제자들에게 이 복음 안에 계속 거하라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제자들이 복음의 진리 가운데 있으면 있을 수록 주님과 더욱 가까워 진다는 것을 요한은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이는 요한의 개인적인 견해가 아닌, 그를 통해 성경을 기록하신 주님의 온전하신 뜻이다. 따라서, 우리가 복음을 나 스스로에게 전해야 함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임이 분명하다. 주님과 더욱 가까워 지기 위해 말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주님을 더욱 닮기 위해우리는 자신에게 먼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이를 좀 더 구체화 하기 위해 세가지 메시지를 가지고 복음을 왜 나에게 전해야 하는지 같이 살펴보길 원한다. 1. 복음을 나에게 전함으로 주님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다.  주님의 영광이라는 단어만큼 성도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것은 없을 것이다. 무한 하시고, 영원 하시며, 전지 전능하시고, 무소부재 하시며, 시간을 초월하시고, 창조자 되시며, 세상 모든 만물의 주인 되시고, 세상 권세 즉, 사탄을 제압하시며, 죄가 전혀 없으신 동시에 우리 인간의 죄를 심판하시는 즉, 온 우주의 심판자 되신 주님. 이러한 완벽한 분이신 주님께 가장 합당한 단어가 바로 “영광” 임에 틀림없다. “영광”은 어떤 발광체의 빛이 너무도 밝아 가까이 갈 수 없거나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그런 찬란한 모습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 그 빛은 어둠 가운데 있는 것을 모두 드러내어 감추인 것이 아무것도 없게 하는 모습을 또한 상상케 한다. 곧, 죄도 없고 흠도 없으신 주님의 완벽한 모습을 표현하는 이 단어는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높으심을 찬양하게 만든다. 또한, 이 영광은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 수도 있고, 죄를 선명히 드러내 보여주기도 하며, 주님과 우리의 간극이 얼마나 큰지를 극명히 보여주기도 한다.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은 우리를 변화시켜 예수님 자신을 닮게 만든다.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고후3:18). 즉, 매일의 삶에서 우리의 주인 되신 예수님의 영광을 바라보면 볼 수록 그 분의 형상으로 변화될 수 있음이 확실하다. 그렇다면, 주님의 영광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그 답이 복음에 있다. 성경이 증언하기를,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낸다 말한다 (고후4:4; 딤전1:11).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은 찬란한 주님의 영광을 우리에게 비추어 그 위대하심을 보게 만든다. 곧, 단순해 보이는 복음 메시지 안에 주님의 충만한 영광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매일 우리 자신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주님의 영광을 덧입어 예수 그리스의 형상을 점점 닮아갈 수 있다. 복음을 통해 우리의 모습이 영광에서 영광으로 점점 변하게 되어 주님의 거룩을 이뤄갈 수 있는 것이다. 2. 복음을 나에게 전함으로 예수님의 의로우심을 바라보게 만든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다고 성경은 말한다 (롬1:17). 복음은 하나님의 의로우신 뜻이다.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죄인을 구원시켜 그의 신분을 탈바꿈시킨다. 죄인에서 의인으로 말이다. 어떠한 세상 권세나 능력으로도 결코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죄인의 신분을 변화시키는 것인데, 복음은 그것을 가능케 한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복음만이 그것을 할 수 있다. 복음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가 전혀 없으신 완전하신 하나님이시다 (히4:15). 이는, 어떠한 인간도 결코 의로울수 없는 반면, 죄가 없으신 예수님만이 의로우시다는 것을 드러낸다. 곧, 복음은 우리로 하여금 나 자신의 의로움(의로운 것이 전혀 없는)을 의지하는 것 대신, 오직 믿음이라는 수단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전가(덧입혀짐) 받도록 이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의롭게 되는 것이다(롬 3:28; 4:5). 즉, 구원은 예수님의 의로우심으로 우리의 죄가 가리워지는 놀라운 역사이다. 따라서, 의인의 신분이 된 우리는 복음을 더욱 묵상할 필요가 있다. 내가 소유한 이 의로움이 과연 나로부터 출발한 것인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은혜인지를 깊이 깨닫기 위해서 말이다. 이러한 복음화를 통해, 우리는 더욱 예수님을 의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오직 의로우신 그분을 따라 자신이 처한 곳에서 그분의 의로우심을 주위 사람들에게 흘려 보낼 것이다. 복음을 매일 나 자신에게 전함으로 말이다. 3. 복음을 나에게 전함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깨달을 수 있다.  복음은 예수님의 희생적 사랑의 메시지이다. 하지만, 인간의 완악한 죄성을 폭로하며, 더럽고 추악한 우리의 마음을 비추는 이 복음이 어떻게 사랑의 메시지란 말인가? 세상이 말하는 한없이 품어주고, 안아주는 달콤한 그러한 메시지가 아닌데 말이다. 되려, “나”라는 자아를 말살시키려 무장된 날카로운 칼과 망치 같이 느껴지는데 말이다. 어떤 면에서 이 말은 일리가 있다. 복음의 능력이 죄 안에 빠져 영적으로 완전히 죽었던 “예전의 나”(구원받기 전)를 영적으로 거듭난 “새로운 나”(구원받은 후)로 바꾸기 때문이다. 하지만, 믿지 않는 자들이 생각하는 폭력적인 이미지의 복음은 성경이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을 막다른 낭떠러지로 몰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만드는 그러한 메시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복음은 그들의 자아를 비인격적으로 파괴하는 잔인한 메시지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되려, 복음은 죄에 속하여 파멸의 길로 달음박질하고 있는 죄인을 향하신 주님의 인격적, 희생적 사랑을 극명히 드러낸다 (롬5:8–11).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요일3:16). 복음은 말한다. 우리 스스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이 죄를 예수님께서 대신지셨다고 말이다.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그 귀한 생명을 기꺼이 내어 주신 이 복음을 통해서만 우리는 무엇이 진짜 사랑인지 알 수 있다. 구원받은 우리는 예수님의 희생적 사랑으로 변화된 자들이다. 무가치한 우리를 가치있는 자로 여겨 주신 그 은혜의 사랑으로 말이다. 이 사랑으로 우리는 영적으로 다시 태어났고, 지금도 그의 풍성하신 사랑을 공급받아 살고 있다. 그리고, 복음에 나타난 그숭고한 사랑이 나 자신만을 향했던 배타적인 모습에서 이웃을 향한 이타적인 사랑을 낳도록 이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한다. 먼저 나 자신에게 말이다. 복음을 묵상하면 묵상할 수록,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주님을 점점 더 사모하게 될 것이다. 변화의 원동력이자 영양분인 그 사랑을 지속적으로 공급받음으로 우리는 영적으로 더욱 강건하게 설 것이다. 그리고, 자기애에 빠져 나 자신을 증명하려 애쓰는데 시간을 할애하지 않을 것이다. 되려, 온전한 사랑의 절대적 메시지인 복음을 묵상함으로 주님의 희생적 사랑을 내 주위 사람들에게 흘려 보내게 될 것이다.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닌 행함과 진실함으로 말이다 (요일3:18).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보여주신 그 본을 따라 우리는 그러한 열매를 점점 맺게 될 것이다. 복음을 통해 말이다. 결론 우리는 이 영광스럽고 정의로우며 사랑이 넘치는 복음을 믿어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난 자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복음으로 사는 자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한다. 바라기로는 여러분 각자의 삶 가운데 복음을 나 자신에게 전함으로 예수님의 거룩하신 인격을 매일 매일 닮아가길 진정으로 소망한다. 부록: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