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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은 ‘미리 아심’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시므로, 하나님께서 미래에 대한 그의 미리 아심에 따라  사람들을 예정하시고 택하시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다. 사실, 이것이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렇게 믿고 있고, 알미니안이 믿는 예정론의 관점이다. 문제는 이러한 관점이 성경이 실제로 가르치는 예정, 선택 및 미리 아심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단순히 미래를 아는 것에 기초하여 택하셨다”는 견해가 왜 성경이 가르치는 것이 아닌지를 이해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선택하시거나 구원하시려고 예정하신 이유를 말하는 두 구절을 먼저 고려해 보도록 하자.

에베소서1장5절은 하나님이”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알려준다. 이 구절에 의하면 우리가 예정된 것은 우리가 한 행위나 우리가 앞으로 할 행위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쁘신 뜻에 따라 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로마서9장15~16절에”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이와 비슷하게 로마서9장11절은 야곱과 에서에 관해서“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그리고 다시 에베소서1장11절에서 우리는“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구절들과 다른 많은 구절로부터 우리는 예정이나 택하심이 우리가 행하거나 행할 행위에 근거하지 않는다는 것이 성경의 일관된 가르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민족과 말과 나라의 사람들을 자신을 위하여 구속하려는 그분 자신의 주권적인 뜻에 기초하여 사람들을 예정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창세 전에 오직 자신의 주권적인 뜻에 따라 미리 결정하셨다(엡1:4).   그 사람이 어떻게 할 것을 알기 때문에 미리 정하신 것이 아니다.

그러나로마서8장29절은” 하나님께서 미리아셨으며 또한 미리 정하셨다”고 말씀하시지 않는가? 미리 정하신 것은 하나님의 미리 아심에 달려 있다고 말하는 것 아닌가? 물론 대답은 ‘예’이다. 이 구절은 예정이 하나님이 ‘미리 아심’에 기초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미리 아심’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말이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지식에 기초한다”는 즉 하나님께서 미래를 미리 보시고 누가복음을 믿을지를 보시고 그 사람들을 예정하시고 선택하셨다는 뜻인가?

만일 그렇다면 이 말은 로마서와 에베소서의 말씀과 모순되지 않는가? 위의 두 구절은 선택이 인간이 하는 행위나 앞으로 할 행위에 근거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다행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한 의문 속에 빠져 있게 하지 않으신다. 요한복음 10장26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 하는도다” 

어떤 사람들이 믿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께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구원을 위해서 선택된 것은 그들이 언젠가는 믿을 것이라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그들이 존재하기도 전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들로 양자 삼기” 위해 그들을  선택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어떤 사람은 믿고 어떤 사람은 믿지 않는 이유는 어떤 사람은 하나님에 의해 받아 들여지고 어떤 사람은 받아 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로마서 8장 29절의 ‘미리 아심’이란 단어가 뜻하는 진리는 하나님께서 미래를 아신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리 아심’이라는 단어는 미래의 사건들과 때와 행동들을 아는 것에 사용된 적이 없다. 즉 ‘미리 아심’이란 단어는 하나님의 전지하심에 대해 사용된 적이 없다.

이 단어가 뜻하는 것은 미리 결정된 관계를 말한다. 하나님께서 미리 구원의 관계를 선언하심으로써,구원의 관계가 실제로 생기도록 하는 하나님의 아심을 말한다.

성경에서‘안다’라는 단어는 때로는 남자와 여자 사이의 친밀한 또는 개인적인 관계를 설명할 때 사용된다.

이와 비슷한 의미로,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기도 전에 그리고 우리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택한 사람을 개인적으로 알고 그들을 그의 양으로 택하셨다.  그것은 그들이 언젠가는 하나님을 따를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을 따르는 것을 보장하기 위해서였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아는 것과 그들을 택하신 것이 그들이 하나님을 따르는 이유이다. 그 반대가 아니다. 즉 그들이 하나님을 따를 것을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선택하신 것이 아니다. 

정말로 중요한 문제는 하나님께서 누가 믿을지 누가 안 믿을지를 아는 것이 아니라, 왜 어떤 사람들은 믿고 어떤 사람은 믿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그에 대한 대답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자비를 베푸시고 어떤 사람은 죄악된  반역의 상태로 내버려 두셨다는 것이다.

존머레이(John Murray)는 이 문제에 대해 이렇게 잘 말했다. “비록’ 미리아심’이 믿음을 미리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도, 주권적인 선택에 대한 성경적 교리는 그로 인해서  없어지거나 증명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믿음을 아시는 것은 확실하다. 하나님은 다가 올 모든 일을 다 아신다.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은 단순하다. 이 믿음이 어디서 왔는가? 이것이 하나님께서 미리아신 믿음인가? 그리고 유일한 성경에서 말하는 답은 하나님이 미리아신 믿음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믿음이라는 것이다(참조, 요3: 3-8; 6:44,45,65; 엡2:8;빌1:29; 벧후1:2).

그러므로 그가 영원 전에 미리아신 것은 그가 믿을 것을 미리아신 자들에게 이 믿음을 일으키게 하는 그의 선언을 전제로 한 것이다.”

 

자료출처: Got Questions? 

번역: 김 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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