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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 속에 자라나는 믿음

혹시 믿음의 삶을 살면서 의심을 느껴 본 적이 있는가

나의 처해진 상황속에서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해 본 적이 있는가? 믿음 안에서 담대하고 견고하게 서 있기 원하지만 초초하고 낙심도 되고 포기하고 싶은 적이 있는가? 왜 나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는데 이런 마음과 씨름하며 고군분투해야 하나 고민해본 적 있는가?

히브리서 11장은 아브라함에 대해 이렇게 기록한다.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9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10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 11:8–10)

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18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 11:17-19)

나도 아브라함과 같은 비범한 믿음의 삶을 살고 싶다 생각해 보았는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같은 사람과 자신을 비교할 때에 나의 믿음은 너무 약하다 생각하지 않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기는 한데 내 삶을 돌아보면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평가하실까?

아브라함이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이유는 아브라함이 특별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다. 히브리서 11장의 초점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얼마나 놀라운지를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에게 있는 믿음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어떤 역사를 이루게 하는지 보여주는데 있다.

어쨌든 아브라함하면 믿음의 조상 아닌가? 

의롭다 하는 믿음의 표본이며 믿음으로 사는 삶의 표본이다. 그러나아브라함의삶전체를보면그의믿음이시작부터그렇게견고하지는않았다.  특히 아브라함이 75세에 하란을 떠나 100세에 이삭을 낳기까지의 기록을 보면 아브라함의 믿음은 우리의 믿음과 그다지 다른 것이 없어 보인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하란을 떠나 약속의 땅에서 나그네로 살면서 그 와중에 타협도 하고 죄도 짓고 의심도 많이 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주시기 전까지 아브라함의 삶을 보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하란을 떠나 가나안으로 왔다. 그 땅에서 평생을 나그네로 살며 장차 올 본향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살았지만 막상 하루 하루의 현실은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라 하신 곳으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믿음으로 떠났다. 그리고 말씀하신 가나안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그곳에서 심한 기근이 일어났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당장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약속의 땅을 떠나 애굽으로 갔다.  그 뿐 아니라 애굽에서 자기 자신의 생명을 부지하고자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하다 큰 봉변도 당할 뻔했다. 이러한 행동들을 보며 우리는 아브라함이 과연 믿음의 조상인가 하고 고개가 갸우뚱 해 지기도 한다.

어쨌든 아브라함은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고 그 후에 조카 롯과의 갈등으로 인하여 약속의 땅을 떠날 기회가 다시 있었다. 그러나 조카 롯에게 먼저 좋은 땅을 선택할 기회를 주었고 자신은 약속의 땅에 남았다. 그렇게 아브라함의 믿음은 삶은 성장기를 맞는다.  그 뿐 아니라 바로 소돔의 왕과 싸우던 연합군을 무찌르고 소돔의 왕이 큰 재물을 주려할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한다. 나중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하게 하셨을 때 행여나 소돔 왕이 아브라함을 부하게 했다는 말이 나올 수 있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아들이 긴 시간이 지나도 생길 기미가 보이지 않았을 때 아브라함은 어떻게 반응했는가

약속을 받은지 10년이 지났다. 그러나 아들이 생길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때 기다림에 지친 아브라함과 사라는 인간의 지혜와 능력으로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다. 그 때 아브라함은 나이 85세였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또 기다리게 하신다. 이스마엘이 태어난 후 14년의 시간이 흐르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나타나셔서 내년 이 맘 때에 아들을 주실 거라고 구체적으로 말씀하셨다. 그 때 아브라함과 사라가 반응은 믿음의 아멘이 아닌 불신의 웃음이었다. 너무 오랜 기다림 속에 약속을 잊고 현실 앞에 무너진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아들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게 해 달라, 즉, 약속의 아들은 안 주셔도 되니 이스마엘을 통해 그 약속을 이루어 달라고 부탁한다. 아니,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브라함이 아들을 얻기 바로 전의 상태가 이렇게 약하고 믿음이 없던 상태였단 말인가? 그렇다. 아브라함은 길고 긴 기다림 속에, 그리고 자신과 사라의 몸과 상황을 고려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이제 역사하실 수 없다 생각했던 것이다. 약속을 의심하고 현실에 안주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아브라함의 약해졌던 믿음은 다시 힘을 었었다. 처음엔 믿어지지 않고 의심을 했지만 희미해졌던 약속의 소망에 다시 불이 붙었고 자신과 모든 남성들을 할례를 하라는 말씀에 바로 순종하였다. 하지만 이렇게 믿음의 조상으로서 다시 한번 일어섰을때 또 다시 아브라함은 아내를 누이라 속여 그랄 와 아비멜렉에게 아내를 빼았겨 애굽에서의 실수를 다시 반복한다. 이것은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실수가 아니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자신의 지혜를 의지하여 거짓말을 한 결과로 하나님께서 이삭을 주시기 바로 전에 사라가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갖게 하는 상태까지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이 무산이 될 수 있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는 불신이며 죄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고 사라를 아비멜렉의 손에서 구해 주신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셔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 가운데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기적적으로 아들 이삭을 선물로 주신다.

로마서 4장에서 성경은 아브라함에 대해 결론적으로 이렇게 기록한다. 

( 4:19–21)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렇게 여러 차례 육신의 눈을 따르고 인간의 지혜와 능력으로 자신을 지키려 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시키려고 하기도 한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였다고 하신다고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드렸다”고 한다! 이삭을 주시기 바로 직전 모든 상황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 질 수 없을 것 같아 안주하고 포기한 것 같은 모습으로 삶을 살고 있던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그것을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다고 평가하신다!

그렇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언제나 승승 장구하며 흔들리지않는 믿음으로 사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는 진정한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고 그 믿음으로 이 땅을 살아간다. 그러나 그 과정의 상당한 시간 우리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과연 하나님께서 나같은 사람을 사랑하시고 사용하실까 하는 의심과 씨름하기도 한다. 내가 처한 상황을 보면 소망이 없는 것 같고 어쩔 땐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고 계시지 않은 것처럼 느낄 수도 있다. 그냥 현실에 안주하며 차선의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그냥 대충 살려고 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 와중에 확실한 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다. 수없이의심과불안과씨름하면서우리는믿음의여정속에서한걸음한걸음발을디디고있다는것이다.  어쩔땐진전하지못하고제자리에서전전긍긍하고있을때도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 전체를 보시고 나중에 우리가 믿음으로 살았다 평가하실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좌절하게 하시고, 상황이나 사람의 지혜를 일절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인도하신다. 그 안에서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신실하심을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신다. 그 안에서 불안과 의심과 씨름하며 신실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성장시키시기를 원하신다.

다시 우리의 삶 속으로 돌아 와서 보자. 

지금 내 삶을 보면 어둠의 골짜기를 지나고 있다고 느낄 수 있다. 내 자신을 볼 때에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몰라서 불안할 수도 있다. 상황을 보면 모두 문이 꽉 막힌 것처럼 보여서 현실에 안주하는 신앙의 삶을 살려고 할 수도 있다.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싶지만 그렇게 못하고 초조한 마음에 조급하게 행동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기억하자. 그 모든 과정들 배후에 사랑이 많으시고 전능하시고 우리를 향하여 계획을 가지고 계신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이 계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삶을 그분의 신실함과 능력으로 인도하셨듯이 우리의 삶도 그분의 신실하심과 능력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우리의 믿음은 연약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우리는 실수를 많이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시다

우리는 신실하지 못하다.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신실하시다

눈 앞에 갈 길이 막막하고 상황적으로 깜깜하다 할지라도, 내 믿음이 불안과 의심 사이를 하루에도 수없이 왔다 갔다 할 지라도, 이 모두 믿음의 여정의 과정의 일부이며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 그러므로 의심, 두려움, 불안함과 연약함과 씨름하면서 오늘도 한 발 또 한 발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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