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해석에 대한 실제적 접근 IIII (갈라디아서 1:6-9)

오늘은 저번 시간에 다루었던 성경 해석의 방법을 가지고 실제적인 해석을 할 차례이다. 사도 바울이 쓴 “갈라디아서”를 살펴볼 예정인데, 도입부인 1장6절에서 9절을 같이 보기를 원하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1:6-9).

역사적 문맥 파악하기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이 편지가 약 2000년 전에 쓰여졌다는 점이다. 이는, 그 당시의 시대 배경과 저자와 수신자의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곧바로 지금 우리의 상황으로 끌어들여 해석하려 한다면, 성경의 문맥이 제공하는 중요한 포인트들을 놓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저자가 이 글을 쓴 데에는 분명한 목적과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먼저 그 당시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글의 인사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자는 사도 바울이다. 이는 글에서 저자 본인을 사도 바울이라 명시하는 것(1:1-3)과 그의 필체, 그리고 여러 초대 교부들의 증언을 통해 확증된다. 그리고, 서신서 제목만 보더라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수신자가 “갈라디아” 지역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는데, “갈라디아”는 그 당시 로마의 속주(Province)로써, 바울이 1차 전도여행 중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던 곳을 가리킨다. 이는 사도행전13-14장에 나오는 루스드라, 더베, 이고니온, 비시디아 안디옥을 지칭한다. 그리고, 바울이 1차 전도 여행을 떠났을 당시는 AD 47-49이었고 , 갈라디아서를 기록했던 때는 AD 50-51정도로 추정됨을 통해, 교회를 세운지 2-4년 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바울이 편지를 보낸 데에는 갈라디아 교회에 어떠한 일 또는 문제가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이 당시 갈라디아 지역에는 유대주의자(율법주의자)들이 복음을 변질 시켜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닌, “믿음과 할례를 받아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이는 바울이 처음에 전했던 순수한 복음(믿음으로만 구원)을 다른 복음(행위 구원)으로 바꾸려는 이단적 행위였기 때문에, 이 소식을 들은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성경의 중심 목적 찾기
역사적인 배경을 파악했다면, 이제 성경을 반복적으로 읽을 차례이다. 서신서는 권면하는 책으로써 대개 저자가 수신자에게 책망과 훈계, 교리에 대한 가르침, 그리고 실질적 적용점을 이야기 할 것이기 때문에 이를 염두해 두고 읽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읽을 때에는 갈라디아서 1장부터 6장까지 반복적으로 읽은 뒤, 바울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수신자에게 무엇을 전하려고 했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이러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세워진 지 2-4년 밖에 되지 않은 교회들에게 바울이 편지를 보낸 이유가 무엇일까?”
“다른 복음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갈라디아 교인들에 대한 바울의 어투가 조금은 강해 보이는데, 갈라디아 교인들이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갈라디아 교인들이 처한 상황은 무엇이며, 바울이 그들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바울이 결국 말하고자 하는 중심 메시지는 무엇일까?”
“바울의 강한 훈계는 주님의 사랑(십자가 복음)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을 던졌다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 컨셉이나 교리를 살펴보길 바란다.
이를 살펴보면, “복음,” “다른 복음,” “사람이 의롭게 되는 방법,” “거짓 가르침 또는 교리,”
“믿음,” “율법의 행위,” “예수 그리스도,” “상속자-유업을 이을 자,” “아들,” “육체의 열매,” “성령의 열매,” “할례,” “십자가” 등이 있다.
종합해보면, 사도 바울은 다른 복음 – 율법의 행위(믿음+할례)를 통해 구원을 얻는다는 교리 – 에 빠진 갈라디아 교인들을 책망하고, 처음 들었던 순수한 복음(예수님의 대속을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음)에 머물러 있음으로 육체의 일을 쫓지 말고, 성령님을 따라 선한 열매를 맺으라 권면하는 서신서 임을 알 수 있다.

문맥 파악하기 (언어적인 접근)

오늘 본문인 갈라디아서 1:6-9은 1:1-5과 1:10-24사이에 있는데, 이를 3개의 문맥 또는 문단(주제의 최소 단위)이라 이야기할 수 있다 (해석자의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 1장6-9절을 감싸고 있는 앞 문단(1:1-5)은 바울의 정체성과 인사말이고, 뒷 문단(1:10-24)은 바울이 전한 복음의 출처와 그의 회심, 그리고 예루살렘 회의(AD 49, 갈2)까지 그가 했던 사역에 대한 이야기이다. 앞 문단에서의 바울의 따뜻했던 인사(1:2-3)가 6절에서 갑자기 강한 어조로 바뀌는 것을 볼 때, 갈라디아 교인이 처한 상황이 굉장히 급박하고, 심각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뒷 문단에서 바울이 피력하는 진짜 복음(2:10-12)의 출처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점을 통해 “다른 복음”은 인간에게서 온 사상(진리가 아닌) 임을 알 수 있다.

해석하기
6절에,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바울은 이 구절에서 갈라디아 교인들에 대해 의아한(놀란) 심정을 표현한다. 복음을 들은지 얼마되지 않아(2-4년) 아버지의 뜻인 “그리스도의 은혜”를 속히 떠난 것과 동시에 다른 복음인 율법 주의에 빠진 점에 대해서 말이다. 해석을 더욱 분명하게 하기 위해, 다른 복음의 특징을 더 파악해보자. 역사를 통해 먼저 살펴본 “다른 복음”은 문맥을 통해 더욱 확실해 진다.
6절에서 보면, “다른 복음”이 “그리스도의 은혜”와 상충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성경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은혜”란, 구원이 인간의 공로가 아닌 주님의 주권(십자가의 은혜)으로 말미암는 선물이기 때문에, 다른 복음(율법 주의, 믿음+할례)은 그 와 반대로 구원의 출처가 하나님이 아닌 인간의 공로, 즉 그 주권이 인간에게서 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7절에서 “어떤 사람들”이 전한 “다른 복음”은 믿는 자를 교란시키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는 특징을 보여준다. 여기서 “어떤 자”는 “우리-사도들”와 대치되는 자들로써, 다른 복음을 전한 율법 교사들을 지칭한다. 그들이 전한 다른 복음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배격하는 것이었는데, 결국 다른 복음인 율법 주의(믿음+할례=구원)는 십자가의 도가 아닐 뿐만 아니라, 신자의 영적 성장을 저해하는 악한 사상 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바울은 8절에서 “우리-사도들”나 “천사”라 할지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했던 복음이 아닌 거짓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 강하게 이야기 한다. 저자가 사용한 가정법은 명시된 내용에 대한 반대 사실을 강조하는 것으로써, “우리”나 “천사”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며(율법주의가 진리라고 주장), 9절에서 또한 너희가 받은 것, 즉 우리가 전했던 복음이 진짜 복음 임을 강조하는데 이는 바울이 전에도 이야기 했고 지금도 반복해서 이야기 하는 이유이다.

즉,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믿음으로 구원)을 속히 떠나 다른 복음(율법의 행위)에 빠진 갈라디아 교인을 질책 하므로, 우리가 전했던 복음이 진짜 복음이며, 그들(거짓 교사)의 교리는 결국 저주를 받을 악한 것임을 강조한다. 그 이유는 바울이 전한 복음은 주님께로 부터 온, 즉 주님의 뜻으로 말미암은 순수한 복음이었지만, 율법 주의자들이 전한 복음은 인간에게서 온 거짓 사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상은 믿는 자들을 미혹하여 율법의 멍에를 다시 지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구원 받았음에도 행위로 구원을 얻는 것처럼 속임), 바울은 이를 매우 심각하게 다루었다. 다음 문맥인 1장 10 – 24절에서, 바울은 주님과 복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 그리고 자신이 전한 복음의 출처를 정확히 밝힘으로 앞에 말한 것들을 더욱 분명하게 한다.

적용
위의 과정을 통해, “다른 복음”의 정체와 그 심각성에 대해 조금은 더 명확해 졌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다른 복음”이 지금의 이단 사상인 신천지나 여호와의 증인이 아닌 “유대주의- 율법주의” 였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우리가 말씀에 대한 적용을 하는데 좀 더 명확한 방향을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필자는 위의 해석에 대해 이렇게 적용하려고 한다 (적용은 해석을 근거로 다양하게 접근할 수 있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죄 된 인간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닌, 완전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온 진리 이기 때문에 이 복음의 완전성은 결코 인간의 행위로 더하거나 뺄 수 없다. 복음은 복음 스러운 율법 주의와 완전히 다르며, 이 다른 복음은 믿는 자의 영적 생활을 피폐하게 하는 교리이기 때문에, 순수한 복음을 매일 나 스스로에게 전해야 겠다. 나의 구원이 나의 행위가 아닌 오직 그분의 은혜로 말미암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잘못 오해하여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도덕적인 타락을 용인할 수 있는데, 항상 깨어 있어 주를 사랑하므로 주님의 말씀에 더욱 순종 해야겠다. 이를 위해 매일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친밀한 교제를 하여 주께서 주신 복음을 믿지 않는 영혼과 복음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영혼들에게 지속적으로 전해야 겠다. 먼저는 가까운 가족들과 지인들, 그리고 알게 될 모든 이들에게 이 복음은 당신을 속박하는 율법주의가 아닌 주님의 완전한 사랑이라는 것과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말이다.

결론
지금까지 문맥을 통해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과 적용에 대해 살펴 보았다. 이러한 방법이 때로는 지식적인 접근으로 느껴져 말씀의 저자이신 성령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그분의 말씀을 올바로 분별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말씀 드리고 싶다. 그리고,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성경 해석의 원천이 우리의 지적 능력이 아닌 성령님의 조명하심이기 때문에 항상 겸손한 자세를 가지고 기도로 주께 나아가야함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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