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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능력

전 인류를 통틀어 죄가 전혀 없으신 단 한 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완전한 하나님이 인간이 되시어 우리가 질 수 없었던 주님의 율법의 요구를 모두 다 지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의 형벌을 지심으로 죽음을 감당하셨습니다. 하지만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죽음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이 복음을 우리는 사랑합니다. 이 능력의 메시지를 믿는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죄인인 우리가 말이죠. 주님의 측량할 수 없는 그 은혜로 죄인에서 의인의 신분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행위가 아닌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새로운 사람이 된 것이죠 (롬3:28).

저는 오늘 여러분들과 생명의 이 메시지를 다시 나누려고 합니다. 이는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주님을 뵈옵는 그날까지 우리 안에 울려 퍼져야 할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더욱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주님의 능력임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1. 복음은 주님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영광” 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찬란한 빛, 형언할 수 없는 광채. 뭐 이러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으신지요. 그렇습니다. 영광은 빛 그 자체를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어둠을 밝히 비추어 더러운 것을 모두 드러나게 하는 그 광채 말이죠. 모든 것을 다 환히 비출 뿐만 아니라 다 태워버릴 것만 같은 태양마저도 이 영광이라는 단어에 걸맞지 않습니다. 이는 차원이 다른 광채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1:5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곧, 죄가 전혀 없는 거룩의 상태를 “영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단어를 또 다른 각도로 살펴보겠습니다.

신약이 쓰여졌던 당시의 그리스 문화는 명예나 명성을 가장 고귀한 가치로 여겼습니다. 누군가로부터 존경받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었죠. 따지고 보면 지금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입니다. 좋은 명성을 얻는 것은 지금도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명성이나 평판은 또한 영광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곧, 이 가치는 어떠한 사람이 가지는 능력과 고귀한 속성, 또는 그 인격에 상응하여 그에 합당한 경외를 표하는 것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4:9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 생물들이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릴 때에” 그렇습니다. 천사들이 지극히 높으신 주님께 그에 합당한 경외를 표현할 때 영광을 돌린다 말합니다.

영광은 또한 주님의 무한하신 능력 그 자체를 지칭합니다. 주님의 영광은 주님의 권능을 대변합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절대적인 힘을 동반한 영광인 것입니다. 찬란한 빛만 덩그러니 있는게 아니라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원동력이 그 안에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절대 불가능할 것만 같던 일도 가능케하는 측량불가의 힘이 곧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바울은 골로새서 1:11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그분의 영광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그분의 온전하신 능력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의 이러한 무한하신 능력의 영광을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십자가 복음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주인 되신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이 주님의 찬란한 영광의 힘을 온전히 담고 있다는 뜻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복음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 또한 디모데전서 1장11절에서 복음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 이는 복음이 주님의 온전하신 영광을 선포하는 메시지라는 뜻입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복음 자체가 주님의 영광을 담고 있는 능력의 메시지라는 뜻이죠. 복음이 주님의 능력입니다.

이를 통해 복음이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영광의 능력을 힘입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을 바라보면 바라볼 수록 우리 안에 주님의 형언할 수 없는 그 찬란한 빛이 거하여 우리로 그 능력 가운데 살게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믿는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항상 복음이 필요한 것이 분명합니다. 주님의 능력의 영광을 온전히 머금고 있는 이 복음 메시지를 매일 묵상해야 함이 마땅합니다. 우리는 복음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2. 복음은 죄인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모태신앙”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아마도 이 단어가 하나의 관용적 표현이 되어 자신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가 “여러분은 날 때부터 죄 가운에 태어난 모태 죄인이십니다” 라고 말씀드린다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조금은 거북하게 느껴지시나요?

그런데 다윗은 이에 대해 이렇게 증언합니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시51:5). 다윗은 자신이 죄악 중에 태어난 죄인 그 자체임을 고백합니다. 스스로 “죄인”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이 메시지는 다윗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즉, 다윗과 같이 우리도 날 때부터 죄악의 사슬에 얽매인 자들인 것이죠.

그런데 이 죄가 얼마나 무섭고 심각한 것인지 알고 계신가요? 죄는 정말 무시무시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죄는 마치 오염의 왕 같아서 우리의 마음을 완전히 더럽게 만듭니다. 죄는 마치 파괴의 주인 같아서 우리를 음란의 사슬로 꽁꽁 묶어서 그 욕정에 매어 삶을 허비하게 하죠. 또한 죄는 마치 잘 훈련된 사기꾼 같아서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교묘히 남을 이용하도록 조장합니다. 그 뿐인가요? 죄는 우리의 마음을 속이고 속여서 거짓의 삶을 살게 만듭니다. 자신의 마음이 죄로 인해 완전히 부패했다는 사실을 모른 채 그렇게 살아가게 만듭니다.

왜 이러한 열매가 나오는지 아시나요? 그것은 죄가 권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죄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힘이 있습니다. 죄는 우리를 그의 종으로 만듭니다. 더 정확한 표현은 이것입니다. 죄는 우리를 완전한 노예로 만듭니다. 죄는 사망의 권세를 가지고 우리의 왕 노릇을 합니다 (롬 5:21). 우리는 죄의 왕권 아래에서 이리저리 끌려다니다가 결국 영원한 파멸을 맞게 되는 것이지요. 이 사망은 단순한 육체적인 죽음 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 사망은 영원한 죽음을 의미합니다. 더욱 절망스러운 소식은 이것입니다. 죄는 우리를 영원한 파멸의 지옥으로 인도한다는 사실입니다. 죄는 우리를 꺼지지 않는 불과 유황의 고통 속으로 달음박질하게 만듭니다. 아무런 제어장치 없이 말이죠.

죄인의 운명은 정해져 있습니다. 영원한 지옥이 죄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그의 설교 “진노하시는 하나님”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의 멸망은 지체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갑자기 임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지옥을 향해 가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십시오. 당신이 알았던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들, 당신보다 지옥에 던져질 이유가 없고 얼마전까지만 해도 당신처럼 살아있던 사람들도 이미 지옥에 던져졌습니다. 지옥에 있는 그들에게는 더이상 희망이 없습니다. 그들은 지극한 비참함 속에서 절대 절망의 통곡을 하고 있습니다.”

이 어찌 가련한 운명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날 때부터 죄 아래 팔린 몸이자 영원한 지옥의 문턱으로 향해가는 죄인 중의 죄인입니다. 어찌 우리가 이 비극의 운명을 거스를 수 있겠습니까. 죄의 권세를 거부할 수 있겠어요. 하지만, 이 죄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권능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무한하신 주의 영광의 능력의 복음이 우리를 죄의 권세에서 구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 입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형벌을 지신 이유는 바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분이 십자에서 죽으심은 여러분의 죄를 대신 지심이요 삼일 만에 부활하심은 능력으로 여러분을 다시 살리기 위해서 입니다. 오직 이 복음에 나타난 주님의 권능이 여러분을 죄에서 구원할 수 있습니다. 영원한 지옥의 문턱에서 구출할 수 있는 것이지요.

로마서 1:16절에서 바울은 이를 명확히 합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복음은 하나님의 완전한 능력입니다. 복음은 주님의 영광스러운 능력의 메시지 입니다. 복음은 죄의 권세를 제압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글을 읽고 계신 분께 간곡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직 구원을 받지 않으셨습니까? 구원의 확신이 없으십니까? 마음을 다해 말씀드립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진정으로 믿으십시오. 오직 이 길만이 여러분의 죄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겪게 될 지옥의 멸망으로부터 건짐 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자신의 죄를 돌이켜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믿는 길 밖에 없습니다. 부디 회개하시고 복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3. 복음은 주님의 의로우심의 기준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깃들여져 있습니다. 로마서 1:17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여기에서 수동형 동사 “나타나다”는 주님의 구원 계획이 밝히 드러나는 것을 암시합니다. 죄인을 구원하시는 주님의 원대하신 계획이 계시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의”라는 단어는 법정 용어입니다. 여기에는 선포의 개념이 담겨있습니다. 마치 법관이 재판장에서 죄가 없는 사람을 “당신은 이제부터 의인의 신분입니다”라고 선포하고, 죄 있는 사람을 “당신은 이제부터 죄인의 신분 입니다” 라고 선포하는 것과 같습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의”는 심판자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준을 따라 누군가를 의인의 신분으로 선포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어떤 기준으로 누구는 의인의 신분으로 누구는 죄인의 신분으로 선포하는 것일까요? 이 기준은 세상과 어떻게 다를까요? 세상의 기준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근거합니다. 행위에 근거를 하지요.

하지만 주님은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기준을 가지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아무리 의로워 보이는 행동을 할지라도 그 행위를 결코 의롭다고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죄인의 신분으로 태어난 우리의 모든 행위는 주 앞에 가증스러울 뿐이기 때문입니다. 죄인의 신분으로 하는 모든 행위는 주 앞에 죄일 뿐입니다. 아무리 그럴듯해 보이더라도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분의 의로우심 근처에도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주님의 의로우심의 기준을 하나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기준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의 아들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는 곧 자신이 죄인의 신분임을 철저히 자각하고 죄를 회개하여 그의 아들의 십자가 복음을 믿는 자를 주님은 의롭다 인정하시고 선포하십니다. 주님은 마치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 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를 믿는 너의 그 믿음을 내가 의로 인정한다. 그의 십자가 복음을 믿는 너를 내가 의롭다고 선포하노라 너는 더이상 죄인이 아니다. 의인이다. 그 이유는 나의 의로움의 기준이 오직 복음을 믿는 믿음을 근거로 하기 때문이다.’ 라고 말이죠.

성경은 선포합니다. 의인이 되는 길은 오직 복음을 믿는 믿음 뿐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이는 우리의 행위를 근거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행하신 의로우신 행위를 근거로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그 분의 의로우심이 우리에게 전가 되는 것이지요. 믿음의 수단을 통해 그분의 완전하심이 우리에게 덧입혀 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스스로 의롭게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철저히 깨닫고 오직 예수님을 의지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죄를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것만이 당신을 의롭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마무리
끝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복음을 매일의 삶 가운데 묵상하시길 바랍니다. 복음을 기억하고 묵상하면 할 수록 그분의 영광의 풍성하신 능력을 힘입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복음에 나타난 주님의 의로우심이 우리를 죄인의 신분에서 의로운 신분으로 변화시키실 뿐만 아니라 더욱 의인의 신분에 합당한 사람으로 만들 것입니다. 복음의 능력은 죄의 권세에서 구출시킬 뿐만 아니라 죄를 이기게 하여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를 닮게 할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 매일 삶 가운데 복음을 더욱 깊이 묵상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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