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0 영어 예배 (English Service)
11:00 한글 예배 (Korean Service)
9:30 & 11:00 어린이 예배 (Sunday school)

보라!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셨는가?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금요일을 우리는 Good Friday Day라 부른다.

아마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모든 믿는자들의 죄가 사해졌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인지 모르겠다.

같은 맥락으로 예수님께서 아버지께서 명하신 모든 일을 다 이루셨기에 그렇게 부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부르는 이유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죄인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고, 그로 인해 누구든지 그를 믿는자는 영생을 얻게 되었기에 좋은 날이다.

그러나 금요일을 맞이하기 전, 목요일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신 예수님의 기도는 이 날을 좋은 날이라고 부르기가 주저된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 기도(요 17)하시고 겟세마네 동산으로 들어가셨고(요 18:1)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셨다 (마26:36-46,  막 14:32-42,  눅  22:40b-46).

다른 제자들을 남겨 두시고(눅 22:40),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마 26:37; 막 14:33)만 데리고 가시면서 예수님은 고민하고 슬퍼하셨다. 예수님은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셨다. 이어서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마 26:38-39; 막 14:35-36; 눅 22:41-42)라고 세번이나 같은 기도를 하시며 괴로워하셨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위해서 오신 것은 아버지의 계획이었고, 아버지의 계획에 순종하여  자신이 어떠한 죽음을 마지 할 것이라는 사실을 아셨는데,  왜 모든 일을 다 이루실 하루를 앞두고 이렇게 두려워 하신 것일까?

끔찍한 죽음이 두려우셨던 것일까?

사람들 앞에서 발가 벗기실 치욕과 십자가에서 못박힐 고난과 이제 당할 죽음의 고통이 너무나 두려우셨던 것일까?

아무 죄도 범하지 않으시고 완전한 삶을 살았는데 이런 끔찍한 죽음을 당하시는 것이 너무나 억울 하셨던 것일까?

예수님은 동산으로 가시기 전에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로 예수님은 그 고통의 이유를 설명해 주신다. (좀 길지만 예수님과 아버지와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서 읽으시기 바랍니다.)

요한 복음 17: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7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8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9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10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12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13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15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19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23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25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그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사옵나이다 

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우리가 가졌던 모든 의문이 예수님께서 하신 기도로 다 해결된다.

특히 예수님께서 표현하신 아버지와 어떤 관계를 가지셨던가에 주목해 보면 예수님의 괴로움의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아버지 하나님의 잃어버린 죄인들을 대신하여 그들의 죄의 값으로 하나님의 무서운 저주를 다받으셔야 했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님께서 그렇게 슬퍼하시고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하시며 괴로워 하셨던 이유가 아니다.

그런데 뭐가 문제이셨을까? 왜 그렇게 고민하고 슬퍼하시며 잔을 옮겨 달라고 간청하셨을까?

그것은 아버지와 가졌던 관계이다.

예수님은 창세 전부터 가졌던 하나님과의 완전한 관계가 잠시나마 끊어질 것을 너무나 아프고 너무나 힘들어 하셨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과 아버지의 관계는 창세 전부터 뗄래야 뗄 수 없는 완벽한 사랑의 관계를 가지신 분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늘 나라에서 아버지와 동일한 영화를 가지셨던 예수님은 이제 아버지께서 보내신 목적을 다 이루셨다. 그리고 곧 창세 전에 아버지와 같이 가졌던 그 영화를 다시 가지실 것을 알고 계셨지만, 영원 전부터 단 한번도 깨어지지 않았던 그 관계가 끊어진다는그 사실에 너무나 힘들어 하셨던 것이다.

창세 전부터 모든 영화를 아버지와 가지셨던 예수님은 모든 속성에서 하나님과 하나도 다른 점이 없으신 분이시다.

거룩하시고 의로우시고, 절대 주권을 가지셨고… 전지하시고, 전능하시고, 전재하시며 사랑이시고 진실하시고 자비로우시다.그 어느 한 속성도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완벽하게 같으신 모든 면에서 하나님이셨다.

아버지와 독생자는 창세 전부터 모든 생각에서 모든 행동에서 모든 속성에서 완벽하게 같으셨고, 그 어느 하나도 전혀 다른 점이아무 것도 없이 완전히 하나이셨다.

완벽하게 서로 사랑하셨고, 모든 생각에 완벽하게 같으셨고, 모든 영화를 함께 동일하게 나누셨던 분이셨다.

영원 전부터 단 한 순간도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조차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이 완전한 관계가 이제 곧 십자가에서 인간들의죄악을 대신하여 저주를 받으시므로 창세 전부터 가졌던 아버지와 관계가 완전히 깨어져 버릴 것을 아셨기에 땀이 피가 되도록흘리셨고 괴로워하셨던 것이다.

다시 부활하셔서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영원 전부터 가졌던 영화를 가지실 것이 확실하지만 이 잠시의 순간을 너무나 힘들어하셨던 것이다.

이 고민과 괴로움을 하나님은 완전히 하나이셨던 하나님은 어떤 상태이셨을까?

아버지의 고민과 힘드신 것은 마찬가지이셨기에  아버지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셔서 힘을 더해 주시며 태초에 계획하신 우리를위한 사랑을 실천하셨다(눅 22:43).

이 엄청난 대가를 치루신 아버지와 독생자의 사랑으로 우리는 구원을 얻었다.

마지막 시간에 “엘리 엘리 라마 사막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시며 스스로 머리를 숙이시고아버지께서 명하신 일을 다 이루시고 돌아 가신 그 예수님의 고통과 절규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깨어지는 그 순간을 아파하시는 절규이셨다.

그 절규로 그 고난으로 우리는 구원을 얻었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컫음을 받게 하셨는가!”(요일 3:1a) 라고 외친 사도 요한의 놀라운 외침은 우리 모두의 외침이 아니겠는가?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셨는가?

하나님의 감사합니다.

0 Comments

Add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