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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곧 열매다

어른이 되면 막연히 무언가 더 쉬워질 줄 알았다. 어린시절 고민했던 것들이 어른이 되면 저절로 해결이라도 될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하나 둘 나이를 먹어가면서 깨달은 게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상황과 환경은 바뀌어도 마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마음을 다루는게 가장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마음이 나를 사로잡아 행동의 방향을 이끈다는 것 또한 말이다.

가장 변화시키기 어려운 부분이자 다루기 버거운 그것 “마음” 

마음은 우리를 대변한다. 우리의 계획이자 의도이며, 열망이자 소망이다 (창 6:5, 잠언20:5). 마음이 곧 나이며, 진정한 나의 현주소이다. 마음은 지식의 터전으로, 감정의 교감처로, 때로는 희생적 의지의 원동력으로 변신하여 우리의 삶을 이끈다. 그래서 마음은 참 다루기 어렵다.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음은 우리의 생명과도 연결되어 있다 (잠4:23). 마음이 곧 우리의 목숨인 것이다. 이 생명은 육체적인 죽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영적인 죽음 곧 영원한 죽음과도 직결된다. 진정한 나인 “마음”은 지금 당장 보이진 않지만, 결국 앞으로 일어날 마지막 순간을 비추는 “운명의 거울” 이기도 하다. 그래서 마음을 알면 알 수록 무섭다는 생각까지 든다. 통제불가능의 영역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더욱 절망스러운 것은 우리의 마음은 완전히 부패했다 (예렘17:9). 여기서 “부패”라는 단어는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상태를 말하는데, 결국 마음은 통제불가능의 영역인 동시에 회생 불가능의 상태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우리 인간이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이며, 나를 이끄는 힘인 동시에 마지막 운명의 길라잡이인 이 마음을 말이다. 그리고, 우린 이 부패한 마음을 “옛 마음”이라 부른다. 

옛 마음

예수님께서 하신 사역의 핵심은 바로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이 변화는 죽은 상태의 “옛 마음”이 전혀 다른 “새 마음”으로 탈바꿈 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현대에 유행하는 심리치료(표면적 변화에 초점)와는 질적으로 달랐다. 진리의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본질적 변화를 추구하신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 “옛 마음”을 고수하며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했던 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바로 바리새인 이었는데, 모세의 율법에 정통하여 율법으로는 흠이 없다 자부하던 자들로서 헌금과 구제, 그리고 금식 기도를 통해 사람들에게 칭송 받았던 자들이었지만, 예수님은 되려 그들을 악한 자라 부르셨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마태 12:34-35).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독사, 즉 사탄의 아들이라 말씀하셨다. 이는 겉으로는 선한 척 했지만, 마음은 완전히 썩은, 즉 “영적으로 죽은자”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행동 또한 마음에 기인한 악한 열매를 맺고 있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옛 마음”은 영적으로 죽어 회심하지 않은 죄인의 상태를 가리킨다. 이 상태는 죄가 전혀 해결되지 않았음에도 죄를 해결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살아가게 만든다. 옛 마음은 죄에 겹겹이 둘러싸여 어둠에 눈이 가리여져, 바리새인이 그러했던 것처럼 진리를 거부하도록 만든다. 옛 마음은 또한 스스로 그 썩은 것들을 정화할 수 있다 자신을 속인다. 즉, 옛 마음은 완전히 부패한 죄 자체이며, 그 마음을 소유한 죄인의 현주소인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헤어나올 수 없는 이 죄악의 구렁텅이는 결국 영원한 사망(지옥)을 낳는다.

그리고, 죄 자체인 “옛 마음”은 어둠에 거하여 빛을 싫어한다. 빛이 그 마음의 썩은 것들을 다 드러낼까 두려워 하기 때문이다. 자기의 악한 마음이 변화되길 거부하는 이 마음은 곧 참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미워하도록 만든다. 이를 달리 표현하자면, “옛 마음”을 “새 마음”으로 바꾸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신 예수님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쁘신 주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이러한 절망적인 마음을 돌이켜 새 마음이 되게 하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새 마음

마음의 모든 비밀을 아시는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을 보면, 우리는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한3:5). 예수님의 이적을 체험한 니고데모. 그러한 그가 무언가를 얻고자 찾아간 예수님께 대뜸 들었던 말은 “거듭나라”는 것이었다. 신비한 체험 대신, 예수님은 그에게 다시 태어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그가 거듭나길 원하셨다. 표면적 변화가 아닌 그의 중심, 즉 마음의 변화를 말씀하고 계셨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거듭남은 옛 마음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을 뜻하는데, 이 변화는 이전 것과는 전혀 다른 성질(nature)로의 변형을 말하며,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되는 것을 말한다. 즉,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라’ 하신 것이다. 이는 어떠한 발전이나 성장을 말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마음의 새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거듭남의 가르침은 니고데모에게 매우 충격적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이는 바리새인이었던 그가 평생을 의지해왔던 율법주의와는 전혀 다른 가르침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마음이 완전히 새롭게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즉 자신의 행위를 기준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생각했던 니고데모에게 마음이 새롭게 됨으로 거듭나지 않고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니 말이다. 스스로는 결코 할 수 없는 다시 태어남을 예수께서 요구하신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절망했을 니고데모에게 한가지 희망적인 말씀을 하신다. 바로, 거듭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알려주신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 3:16). 곧,예수님은 가엾은 니고데모에게 마음의 변화는 너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아버지의 독생자인 나를 통해서만, 즉 나를 믿을 때에만 가능하다는 것을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니고데모의 “옛 마음”은 예수님을 믿을 때에만 변화될 수 있으며, 믿음으로 거듭난 그는 “새 마음”과 함께 영생도 함께 얻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음”의 변화가 곧 그의 마지막 운명까지도 결정하는 것이다.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마지막 운명까지도 말이다 (요한5:24; 10:28).

마음의 열매

이처럼 마음이 새롭게 되는 것과 영생을 얻는 것은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을 때에만 가능하다. 그리고, 예수님만이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켜 통제불가능의 영역을 통제하도록 이끄신다. 이 마음의 변화는 우리의 옛 본성이 추구했던 악한 것들을 미워하게 만들어 옛 마음에 기인했던 열매들을 버리고, 그 자리에 새 마음의 열매들로 채워 예수님을 따라 살게 만든다 (요한12:46; 15:16).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고후5:17).

결국, 우리 마음의 성질(nature)은 그 열매를 통해 분별된다. 우리가 거듭난, 즉 “새 마음”을 가진 기독교인인지 아니면 거듭나지 않은 “옛 마음”의 종교인인지는 마음에서 출발한 열매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이다. 마음이 열매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주께서 말씀하시길, 좋은 나무에서 나쁜 열매가 나올 수 없고, 나쁜 나무에서 좋은 열매가 나올 수 없다고 하셨다 (누가 6:43). 나무는 결국 열매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누가6:44). 곧, 우리가 내는 열매를 통해 우리가 진짜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거듭난 심령은 선한 열매를 맺는다. 더이상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새 마음의 주인 되신 예수님을 사랑한다. 매일 그분을 쫓아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 받는데 열심을 낸다 (롬12:2). 그리고, 더이상 죽은 자가 아닌, 산 사람으로서 날로 날로 마음이 더 새로워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자신의 삶을 그분을 닮아가는데 드림으로 말이다. 

결론

사망에서 생명으로 변화된 새로운 마음은 그에 걸맞는 좋은 열매를 맺는다. 이는 새롭게 태어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에 합당한 모습이 나오는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물론, 때때로 걸려 넘어져서 슬퍼할 때도 있을 것이다. 성화의 과정 가운데 내가 진짜 믿는 자가 맞는지 의구심이 들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복음으로 마음이 새롭게 된 자들이다. 그 과정이 결코 만만치 않겠지만, 우리 열매의 근원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주신 마음에 합당한 열매를 매일의 삶 가운데 맺어 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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