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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에서 배우는 진리

거의 한 달 넘게 레위기를 마치고 이제 민수기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레위기는 참 어려운 책이라는 생각을 늘 했고, 이번에도 예외 없이 그리했습니다.

여러 가지 제사법 등이 헷갈리기도 하고 읽어도 매번 잊어버리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지난 한 달 동안 베이스캠프로 거의 매일 읽었던 것을 여러분과 같이 나누었는데 이제 이 책을 끝내서 무엇인가 여러분과 종합해서 나누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제가 사랑하는 워렌 워스비 목사님의 글을 읽고 성도 여러분과 함께  나누려 합니다.

우리 교회와 상관이 없어 보이는 구절이나 번역이 어색한 구절들은 제 말로 바꾸어서 옮겼습니다.

번역이 매끄럽지 못하고 표현이 힘든 것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워렌 목사님의 이 글은 레위기를 읽은 우리에게 참 도움이 되는 좋은 글로 생각이 되어 여러분과 나누는 것이니 시간을 들여서 읽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김상우)

레위기에서 배우는 진리들

원작: 워렌 워스비

하나님께서 성경 전체를 거룩함을 주제로 삼으신 사실은 거룩함은 우리가 감히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주제라는 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레위기에는 우리가 다 연구할 수 없었던 흥미진진한 세세한 내용이 많이 있었지만, 주요 교훈은 분명히 두드러집니다. 이 교훈 중 몇 가지를 요약해서 우리들의 삶에 실제로 적용해 보기를 원합니다.

  1. 우리들의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함을 경시할 때마다 우리는 인간의 죄를 가볍게 여길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함과 사람의 죄를 가볍게 여기는 두 오류가 합해질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를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복음을 전하려면 죄를 미워하는 하나님이 계셔야 하고, 그 죄를 위해 스스로 큰 희생을 치루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계셔야 합니다. 신학자인 칼 F.H. 헨리 1세는 “하나님은 사랑이실 뿐 아니라 거룩하시기 때문에 속죄함을 제공하셨다. “라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죄와 완전히 “구별”된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일반 상식과는 다른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더러운 것과 구별된 분이십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거룩함은 차디찬 얼음덩어리와 같이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생동적이며 살아 있으며, “불이 섞인 유리 바다”(계15:2)와 같은 거룩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은 거룩합니다.  그분의 지혜, 그분의 능력, 그분의 판단, 그리고 그분의 사랑까지 모두 거룩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거룩한 사랑이 아니었다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본성과 거룩하신 율법의 정당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세상의 죄를 다 담당하여 죽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독생자를 보내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1. 하나님 당신의 백성 거룩함을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에서 여덟 번이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하나님의 능력이기에 거룩한 삶을 보증합니다. 위대한 의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영적 건강과 충만함을 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이 “거룩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출 19 : 6). 그리고 이 지고한 부르심은 오늘날 그리스도인에게도 적용됩니다. (벧전 2 : 9). 오늘날의 교회들은 잘 지어진 건물, 큰 예산, 많은 군중, 바쁜 일정 등으로 잘알려졌지만 거룩한 곳으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야.” 혹는 “그녀는 하나님의 여자야!”라고 정직하게 칭찬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몇 명이나 됩니까?  자격을 갖춘 “그리스도인”이 몇 명이나 됩니까?

이스라엘은 거룩한 나라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원하신 세상에 증거가 되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의 죄 때문에 고통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이방 세계는 이스라엘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속했다는 증거를 보지 못했기에 고통을 겪었습니다. 교회는 입술로 증거하는 것을 강조하지만, 경건한 성품과 행동으로 살아가는 것을 소홀히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입술로도삶으로도 그리스도의 증거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네가 세상의 입술이니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너희는 세상의 빛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설교이다.”라고 말하지 않으시고, “너희는 소금이다.”고 하셨습니다. 거룩한 삶은 어둠을 쫓아 버리고 부패한 것을 물리쳐 버립니다.

  1. 거룩함은 제단에서 시작됩니다.

레위기는 기도 모임, 찬양 예배 혹은 친교 모임으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죄인들을 위해 제단에서 흠 없는 제물의 피 흘림으로시작합니다. 그것은 다섯 가지 희생을 설명하며 시작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이 희생 제사는 우리를 위해서 돌아가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생각나게 합니다.

거룩함을 향한 첫걸음은 나 자신의 죄를 받아들이고 죄로부터 유일한 구세주이시자 구속 주로서 그리스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나의 진지한 결의, 종교적 습관 또는 신학적 지식으로 인해 거룩해 질 것으로 생각한다면, 실패를 향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영적인 지식이 필요하며 경건한 습관을 기르기 위해 결단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이 모든 좋은 것은 해롭지 않을지 모르지만 아무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죄에 대한 분노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죄로 인해 하나님의 독생자를 죽였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아들이 고난을 겪고 죽게 되었습니까? 죄를 버리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거룩함을 키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또한 죄를 정복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를 죄에서 깨끗하게 하고 (요일 1 : 7, 9), 그리스도 앞으로 가깝게  인도하고(엡 2:13),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합니다(히 9:14). 우리는 그리스도께서다 이루신 일과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된 우리 자신의 위치를 받아 들임으로(히 13:12) 말미암아 거룩한 삶을 향한 첫걸음을내디딜 수 있습니다.

  1. 거룩함을 추구하는 것은 순종과 절제가 따릅니다.

유대 예배자가 제단에 희생제물을 가져다가 자신의 죄가 용서받았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그 예배자들은 또한 깨끗하고 부정한 것에 관해 주님이 주신 규칙과 규정을 따라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거룩하신 하나님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말해 줄 권리를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신자들은 유대인의 식사 규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지만, 우리는 그들이 설명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나는 죽은 몸을 만지거나 뼈를 집어 올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자신이]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야고보서 1:27)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우리에게 좋지 않은 일에 참여할 수 있는 면허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현재 기독교인들이 성서 연구에 중점을 두는 것에 박수를 보내고 성경 공부를 위한 많은 훌륭한 도구들을 가진 것을 기뻐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요일 3:22)해야 합니다. 절제된 순종은 거룩한 삶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삶 속에서 진리를 입증하는 것보다 성경을 토론하고 논의하기가 훨씬 쉽습니다.

구약의 유대인들은 더럽혀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행해야 했습니다. (엡 5:15).  일상 생활의 모든 면, 즉 옷 입는 것, 음식 먹는 것, 만지는 것, 함께 만나는 사람은 그들이 조심해야 하는 성결의 표준이었습니다. 구약 성도들은 삶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신자들은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참석하고 또 다른 6일 동안 기독교 서적을 읽은 것으로 자신이 영적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거룩함이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점점 더 많이 영향을 미치기 시작할 때 우리는 비로소 거룩해지는 데 진전을 이루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5. 거룩함은 하나님께로부터 것이어야 하며 진실해야 합니다.

우리는 “거짓 열심”을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론의 아들인 나답과 아비후를 죽였습니다. 그들은 “다른 불”과 거짓 열성을 성소에 가져와서 하나님의 거룩한 법을 어겼기 때문에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날은 그렇게 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하셨다면, 우리 중에 누가 아직 남아 있을까요?

감정에 따른 종교적인 느낌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또한, 그러한 느낌이 없다고 해서 하나님을 기쁘게 못한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들의 열정은 육신이나 사탄의 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제단에서 성령에의해 점화되는 온전한 ‘불’이어야 합니다. 사탄은 거짓의 아비입니다. 우리는 그의 거짓을 막아야 하고 그의 기만을 거부해야 합니다.

  1. 거룩함은 제사장의 중재가 필요합니다.

레위 지파에서 태어나지 않은 구약 유대인은 성막의 신성한 곳에 접근하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그는 제사장들의 중재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야 했습니다. 신약 교회에서 하나님의 모든 백성은 제사장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늘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벧전 2 : 5).

예수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벗어나서 거룩하게 자라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돌아가시고 다시 부활 하셨을 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모든 일을 다 마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분은 하늘에서 우리들의 성화를 위해서 중재하시며 아직 완성되지 않은 우리를 위해 역사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하게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히 13:21)

구약의 신자들과는 달리,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은 그분의 거룩하고  성스러운 존전에서 하나님과 교제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히 10 : 19 ~ 22)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히4:16)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되기 위해” 시간을 내어 하나님과 교제하지 않는 한, 우리는 결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거룩함과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으로 자라지 않을 것입니다.

        7. 거룩함의 부재가 이 땅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우리는 죄가 단순히 개인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모세는 백성들의 죄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에 영향을 미쳤으며, 그들이 반역을 계속하면 땅이  “토할”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우상 숭배와 성적 부도덕은 하나님이 땅을 오염시키는 것으로 특별히 지적하신 두 가지 죄입니다. “너희는 이 모든 일로 스스로더럽히지 말라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들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더러워졌고 그 땅도 더러워졌으므로 내가 그 악으로 말미암아 벌하고 그 땅도 스스로 그 주민을 토하여 내느니라”(레 18 : 24 ~ 25).

우리는 거룩한 표준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하지만, 구원받지 못한 땅의 시민들에게 하나님의 법을 강요할 권한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공언하는 교회의 사람들이 이러한 표준을 스스로 실천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교회가 세상과 같이 된다면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우상 숭배와 부도덕은 오늘날의 사회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 되었을 뿐 아니라 인정되고 권장되기도 합니다. 소설, 영화 및 TV 프로그램은 오늘날의 오락에서 중요한 부분이 되어 성적 부도덕을 보여주고 이를 미화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릎을 꿇고 애통해야 할 죄는 이제 즐거운 오락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종류의 삶을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의 삶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이러한 우상 숭배와 부도덕은 교회를 침범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집에서” ”(벧전 4:17)으로 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8. 거룩함은 개인적인 일이 아닙니다.

구약 성도는 예배 공동체의 일부였습니다. 그들은 “혼자” 하지 않았습니다. 제사장들은 그 나라의 영적 삶의 감독자들이었습니다. 레위사람들이 그들을 도왔습니다. 그리고 나라의 각 구성원은 죄와 세상과 계속 싸웠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의 위험한 경향 중 하나는 “개인적인 기독교”에 대한 강조입니다. 각 신자는 “고독한 순례자”이며 성결을 구하는 데 도움을 줄 다른 사람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우리는 주님과 함께 매일 각자가 개인적으로 헌신하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거기서 끝나서는 안 됩니다. 또한 우리는 영적 지도자와 교회의 다른 신자들의 도움이 필요하며 그들은 우리들을 필요로 합니다.

안식일의 평온함은 부모들에게 자녀들에게 말씀을 가르칠 기회를 주었으며, 각 유월절은 그분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를 돌아 볼 수 있는 또 다른 기회였습니다. 다른 절기들은 회개하고 같이 즐기며 기뻐하기 위해 공동체를 하나로 모았습니다. 우리가 “함께 모이는 것”(히 10:25)을 버릴 때,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교제하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베푸시는 중요한 축복을 우리 스스로 버리는 것이 됩니다.

9. 거룩함은 주님을 영광스럽게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사람을 거룩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거룩한 삶은 그의 은혜의 산물이며 그의 능력입니다. 우리 삶 속에서 드러나는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으로 오로지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보실 수 있고, 다른 사람들도 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계속해서 하나님께 순종하며 우리 자신과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통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10. 거룩함은 하나님만 기쁘게 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들판에서 홀로 걸어가던 유대인이 우발적으로 더러워졌다면, 그가 취할 조치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진영 밖에 머물면서 청결을 위해 필요한 조처를 하거나 진영으로 돌아와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고 더러운 채로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는 오염된 손으로 그가 만지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을 오염시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모든 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가 하나님의 율법에 주어진 규정을 준수하고 다시 정결해 지지않는다면 그는 거짓 속에서 살며 큰 피해를 입힐 것이고 결국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상 수훈에서 강조하신 원칙 중 하나는 우리가 사람 앞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산다는 것과 사람들을 감동하게 하기 위해서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마 6:1-18). 우리가 어떤 일로 세상의 친구들에게 오해를 살 수 있지만, 그 일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이해하시고 인정하시는 일인 경우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단순히 종교적인 평판을 쌓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품을 바로 세우는 데 헌신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다면 우리의 친구들이 아무리 큰 박수로 환호한다고 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 4:13) 그러므로 숨기려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요한 일서 1장 5~10 절에 따르면,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면 (6 절) 곧 우리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8 절), 그 결과로 하나님을 속이려고 애쓰게 된다(10 절)고 합니다. 이것은 좌절과 수치심을 불러일으켜서 점진적으로 인격 파탄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거룩한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공개적으로 진실하게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야 합니다.

저는 몇 년 동안 A.W. 토저의 말이 새겨진 벽걸이를 걸어 놓고 있습니다.

토저 : “하나님을 아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쉽고 가장 어려운 일이다.”

하나님을 알고 더욱 더 그를 닮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목표를 달성하려고 할 때 우리가 원하는 모든 도움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 한편, 우리와 우리 주변의 거의 모든 것이 우리를 상대로 대적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는 일은 어려운 일 입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눈을 주님께 고정하고 달려 나가기를 작정하는 거룩한 결심을 해야 합니다(히 12 : 1 ~ 3).

그것은 이루어질 수 있는 일입니다.  만일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하나님께서 여덟번이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의 계명은 하나님께서 가능하도록 만드신 능력의 약속입니다.

거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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