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0 영어 예배 (English Service)
11:00 한글 예배 (Korean Service)
9:30 & 11:00 어린이 예배 (Sunday school)

결혼의 신비

안타깝게도 요즘 경향을 보면 전통적인 결혼관이 점점 없어지는 것 같다. 많은 젊은이들은 점점 결혼을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 여기며, 그들 중 심지어는 비혼주의를 따르기도 한다. 이뿐 아니라, 결혼을 한 커플들도 가치관의 다름으로 인해 서로의 연합을 쉽게 포기하고 이혼을 결정하는 추세이다.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개인적으로 참 마음이 아프다. 결혼에 대한 잘못된 생각 때문에 이를 아예 포기하거나, 행복을 줄 것만 같았던 이 제도가 되려 아픔이 되어 서로 갈라서는 이 슬픈 현실 말이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물론, 저마다의 이유는 분명 있겠지만, 결혼이 어디서 시작 됐고, 무엇을 위한 것인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결혼의 시작과 목적

결혼의 시작에 대해 많은 의견들이 있다. 어떤 이는 인류를 존속시키기 위해 만든 인간의 제도라 말하며, 사회적 경제적 유익을 위해 고안한 인류 최고의 발명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성경은 이와는 상반된 이야기를 한다. 하나님께서 결혼을 만드셨다고 말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창2:18). 결혼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제도이다. 아담이 죄가 없는 상태였을 때에도 그리고, 수많은 피조물의 이름을 지을 수 있는 권위를 부여 받았음에도 그는 뭔가 부족했다. 그것은 바로 돕는 배필인 아내의 존재였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주님의 명령은 아담 혼자서는 결코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창1:28). 주님은 그러한 아담에게 그와 동일한 본질을 가진 아내를 만드셔서 그에게 보내셨다. 온전한 연합을 알게 하시기 위해 말이다.

아담이 만나게 된 아내 하와는 그와 함께했던 동물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존재였다. 그의 외로움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으며, 가장 합당한 돕는 배필이었다. 23절에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표현은 이 둘의 온전한 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성경은 또한 증언한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2:24). 즉, 연합의 근본 단위가 부모가 아닌 남편과 아내에게 있으며, 둘의 온전한 연합(육체적, 정신적, 영적)이 주께서 결혼을 제정하신 본래 목적임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결혼의 질서

결혼은 그에 합당한 질서가 존재한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온전한 연합은 질서를 잘 지킬 때 일어난다. 하지만, 주님은 여자를 결코 남자보다 열등하게 만드시지는 않으셨다. (창1:27). 우리 주위만 둘러봐도 남자보다 훨씬 유능하고 똑똑한 여자들이 얼마나 많으며, 영적으로 더 성숙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남자가 여자보다 더 뛰어나다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주님은 그러한 동등한 본질을 가진 이 둘에게 명확한 질서를 부여하셨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엡5:22-23a). 주께서는 아내들에게 남편을 다스리라 하지 않으셨다. 되려 남편에게 복종하라 명하셨다 (죄를 짓도록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면). 여기에서 쓰인 “복종-후포타소”이라는 단어는 군대의 계습 서열에서 쓰이는 단어이다. 바로 기꺼이 자기 자신의 뜻을 포기하고 권위자 또는 상관의 뜻을 따른다는 뜻이다. 이런 상상을 한번 해봤다. ‘만약 내가 여자로 태어나서 나같은 남편과 살게 된다면 과연 주님의 이러한 명령을 잘 따를 수 있을까?’ 정말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같은 죄인으로서 결점투성이인 나 같은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니 말이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질서는 세상에서 종종 발견되는 자비와 사랑이 없는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일방적인 복종 또는 순종을 가르치지 않는다. 곧, 남편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한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엡5:25). 남편들이 아내들에게 순종을 말하기 전에 우리 남자들은 먼저 희생적인 사랑을 공급해야 한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처럼 말이다.

질서의 핵심은 바로 남편에게 있다. 남편의 영적 수준이 아내의 영적 성장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남편이 아내의 머리이기 때문이다. 주께서는 바로 이 질서의 신비를 통해 가정의 온전한 연합을 이루신다. 남편은 아내의 신체적 정신적 영적인 리더가 되어 희생적 사랑을 베풀고, 아내는 이러한 남편에게 주를 따르듯 순종하는 모습. 이것이 바로 주님이 제정하신 결혼의 질서이다.

참된 결혼의 비결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말씀을 가지고 결혼 생활에 적용하려 하지만 종종 실족한다. 나 스스로도 ‘다음에는 아내에게 이러한 행동은 하지 말아야지, 이러한 말은 조심 해야지, 조건 없이 사랑해야지’ 다짐하면서도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미성숙한 인격과 이기적인 마음에 기인한 행동으로 아내를 아프게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아내들은 ‘주께 순종하 듯 남편을 섬겨야지’ 매일을 다짐하면서도 이해가 되는 부분만 순종하고, 조금만 본인의 생각과 다르면 이내 받아들이지 못하여 불순종의 태도로 까지 발전을 하기도 한다. 결국, 결혼이라는 이 아름답고 고귀한 연합은 남편과 아내, 이 둘의 능력만으로는 결코 불가능하다.

결혼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통해서만 온전해 질 수 있다. 에베소서 5장에서 바울은 온전한 결혼을 설명하기 위해 창세기 2장의 메시지를 확장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연결시킨다. 곧, 예수님이 우리 결혼의 주인이신 것이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 지셨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영적으로 죽은 자에서 산 자로 부르셨다. 이 복음을 믿음으로 우리는 구원 받았다. 우리의 죄로 인해 아버지 하나님과 단절되었던 관계를 예수께서 회복 시켜 주셨다. 우리의 능력이 아닌 주님의 능력으로 말이다. 예수께서 이 온전한 연합의 중보자가 되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우리의 신랑이 되어 주셨다. 처참한 죄에 빠진 신부를 구원하시기 위해 죽음을 감당하셨다. 그리고, 부활의 능력이 되어 주셨다. 스스로는 결코 할 수 없는 이 무능력한 신부를 변화시켜 자신과 온전한 연합을 이루시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 연합의 창시자이자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야 한다. 결혼의 연합이 우리에게 그리고 서로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닌 예수님께 달려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더욱 묵상하고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남편은 아내를 더욱 사랑하게 되고, 아내는 남편에게 더욱 순종하게 될 것이다. 서로가 그럴만한 행동을 해서가 아니라 예수께서 우리에게 그러한 사랑과 능력을 주시기 때문이다.

결론

결혼은 정말 아름다운 주님의 선물이다. 우리가 천국에서 주님과 겪게 될 그 온전한 연합을 이 땅에서 부분적으로나마 결혼을 통해 맛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결혼은 우리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위한 도구이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 그리고 온전한 연합을 위해 우리의 능력이 아닌 예수님을 통해 이뤄 나가길 소망한다.

0 Comments

Add a Comment